우리는 표징과 표징된 사물을 이렇게 신중하게 구분하는 것이 성례에 관한 칼빈의 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지만 이것이 그의 성찬론의 핵심적 요소에 해당된다.

우리는 이미 성령의 사역을 제외한다면 성례가 아무런 효능이 없다는 칼빈의 주장에 주목하였다. 그의 논의의 이 시점에 있어서 칼빈은 계속해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설명한다. 그는 성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례는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도 시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들을 우리에게 선언하고 전해주며, 또한 보증물과 증거물로서 이를 우리에게 확증시킨다. 성령은 하나님의 은혜들을 가져다주시며, 우리 가운데 성례를 받을 장소를 제공하시고, 성례들이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이 사실은 중요하다. 칼빈은 첫째 이유를 제법 길게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제정하신 성례라는 제도 자체 속에 그의 성령의 임재의 능력을 통해서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제정하신 성례의 시행이 열매 없거나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성령의 내적 은혜를 외형적인 성례의 사역과 구별하여서 별도로 다루어야 한다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표징을 통해서 약속하시고 나타내신 것은 무엇이든지 진실하게 시행하시며, 또한 표징들도 그 제정자가 참되시고 신실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 효능이 부족하지 않다.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은 잘못된 개념을 파괴한다: "칭의와 성령의 능력은 그 요소에 포함되어 있다."

칼빈 교리의 또 다른 측면은 하나님께서 참되게 그가 표징을 통해 나타내시고자 하는 바를 시행하신다는 사실이다. 성례를 집행하는 사역자의 행위와 하나님의 행위 사이에 연결점이 존재한다.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사역자가 외적 행위를 통해 나타내고 증명하는 한도 내에서 성취하신다."고 주장한다. 다른 곳에서 그는 "더군다나 참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의 숨겨진 효능으로 외형적 표징을 통해서 상징하는 바를 행하신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 편에서 볼 때 헛된 표징을 우리에게 설정하지 않으시지만 동시에 이 표징에 실제와 효능을 덧붙이신다." 칼빈의 견해에는 성례를 통해 약속된 것은 실제로 그리고 참되게 주어진다. 그러나 비록 사역자에 의해 표징이 주어지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실재를 정상적으로 허락하신다는 사실이 칼빈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실에 다음과 같은 예외가 있었다:

 

 

세례 또는 성찬의 성격은 시간의 순간에 얽매여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께서는 성례를 통해 그가 상징하시는 바가 즉각적 효과를 통해 충족되고 표현되는 것을 언제나 보신다. 표징의 사용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때로는 이 표징보다 선행하고, 때로는 이 표징보다 후행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칼빈은 성례의 은혜를 예외 없이 표징이 시행되는 시각에 국한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주권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번역: 이신열)